현실감각 0% :: [러시아/몽골 여행일기] 시베리아 횡단열차 2일째

여행기, 사진 2017. 12. 16. 14:01

[러시아/몽골 여행일기] 시베리아 횡단열차 2일째




새벽 6시경 어디선가 열차가 멈춰서서 사람들이 우르르 타는 바람에 잠을 깼다. 울란우데에 도착했나보다. 우리칸에도 한 외국여자가 들어왔는데 이름이 한나(Hanna)라고 했다. 울란우데에서 기차가 정차하는 시간은 약 40분, 잠 깬김에 일어나 먹을거좀 사올까 싶어 울란우데 역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문 연 상점이 하나도 없다. 울란우데는 나름 자치주 수도고 시베리아에선 큰도시라서 새벽 6시에도 상점이 좀 있을까 싶었는데 전멸이라니..


기차 안에서 바라본 6시의 울란우데 역. 아무것도 없다 ㅠ


7시가 조금 안됐을 무렵 기차는 다시 출발, 씻으려고 수건과 비누, 치약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앞은 이미 씻으려고 모인 사람들로 바글바글. 남자 화장실은 객차 뒷쪽, 여자 화장실은 객차 앞쪽이었지만 남녀 화장실 구분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화장실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몰튼이 홍차 티백을 주며 객차 뒷쪽에 있는 차장실에 뜨거운물이 나오는 온수기가 있으니 그걸 이용하라고 친절히 알려줬다. 고맙게 받고 아침 혹시 먹었냐고 물어보니 식당칸이 문을 닫아서 아직 못먹었단다. 아침을 못먹는건 아쉽지만 덕분에 홍차로 물배라도 채움.


기차에 있는 온수기, 

전기로 물을 끓이는줄 알았는데 뒷쪽에 화목보일러와 석탄이 있는걸 봐선 아마 석탄으로 물을 끓이는듯??!


화장실은 수도꼭지를 누르고 있어야지만 물이 나오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깔끔하고 괜찮았다.


오전 9시 경 자구스타이라는 작은 마을에 정차. 내려보니 여기도 뭐 별거 없다. 그런데 정차를 왜 1시간 가까이 하나 봤더니 우리 열차 뒤에 있던 객차를 하나씩 떼어내고 있었다. 객차라고는 우리칸밖에 없고 떨어져나감. 아마 효율을 위해 필요없는 칸들을 하나씩 떼어내는듯? 기차가 막 떨어져나가고 여기저기 섞이고 해서 객차가 어디갔는지 몰라 한참을 헤메다가 어제 자리바꿔준 중국아가씨들이 알려준 덕분에 탑승.

객차가 떨어져나간건 좋은데 문제는 식당칸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 ㅠ 배고픈데 가방속에 먹을거라곤 콜라하고 보드카밖에 없음 ㅠ 인터넷 블로그에서 차장 아줌마가 먹을것도 판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사가지고 갔는데 그건 급행열차 얘긴가보다. 우리 기차는 차장아줌마가 아무것도 안판다. 좀 팔아주려고했는데 ㅠㅠ 


2층침대 위에 누워서 창밖을 바라보며 홍차마시기 ㅋ



1층 의자에 앉아서 창밖 바라보기.


창밖에는 끝없는 벌판이 계속 펼쳐졌다. 

창문은 열수 있게 되어있는데 나와 몰튼은 힘이 딸려서 문을 못열음 ㅋㅋㅋ 몰튼이 자기는 엔지니어라서 힘이 없단다ㅋㅋ 그래서 나도 엔지니어라서 힘이없다고 하니까 몰튼이 우리 둘다 머리로 일하는 사람이라서 힘이 없다고 나름 위로해줌.ㅋ

아무튼 창문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몽골친구가 자기가 열겠다고 하더니 한팔로 스르륵 창문을 연다 ㄷㄷ


창문이 열려서 기차 밖으로 카메라 내밀어서 사진찍을 수 있음 ㅋ

근데 차장아줌마한테 걸리면 혼남 ㅋ 바람들어오면 춥다고 ㅋㅋ


그래도 중국아가씨들이랑 몰튼이랑 문열고 몰래몰래 막 찍음 ㅋㅋ 


손내밀고 찍어도 벌판밖에 없고 딱히 찍을게 없다는건 함정 ㅋ



군데군데 작은 역들에서 계속 정차한다.




나와 몰튼, 한나 그리고 창문 열어준 우리칸 몽골친구 (이름을 까먹..ㅠㅠ 몽골사람 이름 너무 어렵다 ㅠㅠ) 4명이서 창밖만 쳐다보며 뻘쭘하게 가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점심얘기가 슬슬 나오면서 대화가 급 많아짐. 나우스키에 가면 점심 먹을데가 있냐고 물어보니 몽골친구가 나우스키역 근처에 작은 레스토랑이 하나 있을거란다. 1시쯤 도착 예정이니 조금만 더 참아봐야겠다.

몰튼하고 오늘 새벽에 탄 한나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여행을 계속했다.(몽골친구는 낮잠 잠) 울란우데에서 탄 한나는 호주사람이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영어 겁나잘함ㅋㅋ 세계일주 중이라고 한다. 몰튼하고 한나하고 서로 자기네 나라 얘기를 막 해줌.

몰튼은 덴마크 연방은 덴마크, 그린란드, 페로 이렇게 3개 나라의 연합인데 다른나라 사람들은 페로는 잘 모른다면서 그에 대한 얘기를 했고, 한나는 영국 연방과 호주와의 관계, 그리고 호주의 관광지 같은 정보를 알려줬다.

그렇게 가는 와중에 창밖으로 강줄기가 보이면 서로 창가에 모여서 사진찍으려고 난리 ㅋ


다 다른데서 찍은건데 모두 비슷해보이는건 왜일까?ㅎㅎ


몰튼이 붙임성이 좋아서 오전에 이사람 저사람하고 친해지더니만 스페인 부부와 프랑스 아가씨도 우리 칸에 놀러왔다. 서로 자기소개하고 각자 여행얘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러시아 국경도시인 나우스키에 도착. 



차장 아줌마가 3시간동안 자유시간이라고 했다. 간단히 역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역 밖으로 ㄱㄱ


우리가 타고 온 울란바토르(Улаанбаатар)-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열차



역에는 개들이 바글바글하다. 집없는 개인듯. 웨하스 먹고 남은게 있어서 줬더니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옆 앞 공원에서 바라본 나우스키 역사


역 앞에 있는 공원


밖으로 나왔는데 우와 여기도 정말 뭐 별거 없었다. 옆 앞에 큰 공원 하나와 작은 마을이 전부..ㄷㄷ

그나마 다행인건 역 앞에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몽골친구가 말한 식당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역 앞에 있는 슈퍼마켓(?)과 작은 노점. 그 옆에는 우체국같은 건물이 붙어있다.




구멍가게에서 산 도시락!! 드디어 빵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먹을수 있게 되었다.


간단히 마트에서 라면과 그리고 홍차를 사고 노점에서 소세지빵을 사먹은 뒤 나우스키 역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돌아다니다가 역 앞 공원에서 한국인 4분을 만났다. 연세가 부모님쯤 되보이시는 4분이서 여행중이셨는데 시베리아에서 그 비싸다는 바나나도 주시고, 보드카도 주셨다 ㅋ 그렇게 얼떨결에 일일 동행ㅋ

얘기해보니 이분들도 식당을 찾고 계셨다. 주변에는 카페가 없었는데 중간에 학교같은곳 앞에서 아이들을 만나 얘기(라고 쓰고 바디랭귀지라고 읽는다)를 해보니 역에서 우측으로 쭉 가다보면 식당이 있을거란다. 뒤늦게 발견하긴 했는데 마트 옆에 카페 500m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 있었다. 우중충한 색 표지판이라서 눈에 별로 안띄임.


식당을 알려준 아이들. 얘들은 초딩때부터 교련수업같은걸 받는지 군복을 입고있다.


카페가는길에 본 소 ㅋ 인도마냥 소가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님.


한참을 걸어가다보니 멀리 녹색 지붕의 카페가 보인다.


공원에서 만난 한국분들이 커피도 사주심!ㅋ



식당이 없는줄 알고 마트에서 간단히 먹었는데 여기에서 밥도 판다ㅠㅠ 예약손님이 있는지 미리 차려진 밥상.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한국분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나보고 혼자 여행다닌다고 멋지다고 하심ㅋ 사실은 같이 올 사람이 없어서 혼자온것뿐인데 ㅠ 

이분들은 한분이 여행사 사장님이셔서 새로운 여행코스를 개발할 겸 함께 여행오셨다고 했다. 몽골에서도 나와 비슷한 루트로 가실 예정인데 내가 일정이 살짝 달라 아쉽게 계속 같이 하진 못할듯.ㅠㅠ

이렇게 한 2시간여가 흐르고 카페에서 나와 여권심사를 받기 위해 다시 역으로 돌아갔다.


여권심사는 기차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경찰복 입고있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패스. 괜히 사진찍었다가 핸드폰 뺏기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ㅎㅎ

여권심사는 한번에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업무가 다른 4팀이 번갈아가면서 들어왔다. 처음에는 세관인지 수화물 검사하는 경찰들이 들어왔고, 두번째는 마약? 수사대인지 개를 데리고 들어와서 한번 뒤졌던 짐을 또 뒤지고 갔다. 세번째에는 출국 심사팀인지 한사람씩 일으켜 세우고 여권사진과 얼굴을 대조하더니만 갔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팀은 도장 쾅쾅!!

여권 심사는 거의 1시간 넘게 이루어졌는데 그 사이에 화장실을 못간다 ㅠㅠ 커피를 마셨더니 쉬마려워서 죽을뻔.

모든 여권심사과정이 끝나자 차장님이 들어와서 몽골 입국카드를 한장씩 건네주셨다.  입국카드에는 숙소를 써야하는데 숙소 주소를 잘 몰라서 버벅이니 한나가 가이드북을 보여줘서 그곳에 있는 아무 숙소나 적고 무난하게 통과. 



오후 1시에 나우스키에 도착한 기차는 여권 심사가 끝나고 5시 10분이 되어서야 슬슬 출발을 했다. 그렇게 조금 가다가 6시경 드디어 몽골 수호바타르역에 도착!


수호바타르에 도착했을즈음에는 이미 하늘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열차 시간표를 보니 거의 2시간 넘게 정차할 예정인데, 이 중 자유시간은 40분정도, 나머지 1시간 20분은 입국심사를 진행하는 시간이다. 

몽골 경찰은 러시아 경찰만큼 딱딱하진 않았다. 출국심사때는 계속 자리에만 앉아있었는데 기차를 내리지만 않으면 대기중에 좀 돌아다녀도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음. 다만 내리지는 못하게 경찰이 막았다. 러시아 출국심사와 비슷하게 경찰이 들어와 짐짝을 검색하고, 그 이외에도 몇가지 검사를 더 하더니만 경찰복을 입은 이쁘장한 몽골아가씨가 입국도장을 쾅쾅 찍어준다.


몽골 독립영웅인 수호바타르의 이름을 딴 수호바타르 시 전경이다. 몽골 제 2의 도시라는데 딱히 대단한 볼거리는 없어보였음.


자유시간 40분동안 몰튼과 함께 나갔는데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환전아줌마가 대뜸 붙잡고 환전할거냐고 물는다. 이런데서 환전하면 바가지 쓸게 뻔했지만 당장 몽골돈이 한푼도 없었기에 러시아에서 쓰고 남은 500루블을 환전했더니 16000투그릭으로 교환해줬다.

대략 계산해보니 2000투그릭이 우리나라돈 1000원. 이아줌마 만원받고 8000원만 준 셈이다 ㅋㅋ 이런 @#$%!! 돈 많이 버실듯 ㅋ

그 돈으로 역 앞 구멍가게에서 몰튼에게 맥주 하나 사주고 나도 두개 샀더니 6000투그릭. 하나에 1천원 꼴이었다.

몰튼을 먼저 보내고 난 몽골 USIM을 사기위해 역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파는곳이 없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 울란바토르에 가서 사야할듯.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Mini Market이라고 영어로 쓰여있는 구멍가게에 갔는데 한국계 미국인 아가씨가 남친과 함께 있었다. 폰 배터리가 없어 충전을 하고싶은데 충전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곤란해 하시길래 내 보조배터리를 빌려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심.


간단히 동네를 돌아다니고 수호바타르역에 다시 돌아오니 노을이 슬슬 지고있었다.


기관차가 달랑 우리 객차 1칸만 끌고옴ㅋㅋ


수호바타르 역사 정문.


함께 기차타고 온 여행객들과 플랫폼에서 맥주를 마시며 놀고있는데, 역무원이 여기서 먹지말라고 내보내서 역 밖으로 쫓겨남ㅋ


그렇게 맥주마시며 출발시간을 기다리는데 어느새인가 한칸밖에 없던 우리 객차 앞으로 10량이 넘는 객차가 새로 붙었다. 몽골에서는 몽골열차를 붙여서 운행하나보다.


내일 새벽 6시면 드디어 울란바토르에 도착한다. 2박3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새 기차에 타고있는 많은사람들과 친해진 덕분에 밤에 우리방에서 파티가 열렸다. 스페인인 2명, 프랑스인 1명, 몽골인 1명, 덴마크인 1명, 한국인 1명, 호주인 1명 이렇게 총 6개국 사람이 좁디 좁은 한 방에 모여서 맥주와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나중에는 독일 아줌마와 우크라이나 아저씨까지 합세해서 총 8개국 사람이 모임 ㅋ 

술이 얼큰하게 취하신 스페인아줌마가 막 나보고 남북간의 관계가 어떤지 김정은이 어떤지 핵미사일은 진짜 있는지 뭐 이런거를 묻길래 나도 카탈루냐 독립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꺼냈더니 이분이 막 격분한 목소리로 거의 1시간동안 카탈루냐 독립의 정당성에 대한 얘기를 했다ㅋ 알고보니 할아버지가 카탈루냐 사람이고 할머니는 스페인 사람인 하프 카탈루니안이란다.

파티하던 당시 한나가 단체사진을 찍고 우리에게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이 아가씨가 까먹었는지 사진 안보내줌.. 페이스북 어딘가에 돌아다니고 있으려나?ㅋㅋ

거의 11시가 넘어서야 파티가 끝났고, 슬슬 자기들 방으로 돌아감. 

좀 아쉽기도 해서 복도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맥주 마시고있는데 나우스키에서 뵌 한국분들을 또 뵈었다. 보드카 먹으러 오라고 초대해주셔서 나랑 몰튼이랑 그분들이 계신 방으로 감 ㅋㅋ 어른앞에서 술 마시는거라 내가 술잔 받아 고개 돌리고 마시니까 이게 한국 술 문화라며 신기해한다. 그리고 그린란드식 술 문화를 알려줬는데 술먹고 취한 상태로 들어서 다 까먹음 ㅋㅋ

그 후에도 보드카가 좀 남았길래 몰튼과 독일인 아줌마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이서 남은 보드카를 더 마시며 우리끼리 더 놀았다. 독일인 아줌마는 몰튼처럼 둘다 몽골에 갔다가 기차를 타고 중국을 가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일본을 간 후 귀국하는 일정이란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길래 특별히 좀 알려줌 ㅋㅋ 그래봤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 정도지만..ㅋㅋ

그렇게 떠들다가 거의 1시가 넘어서야 잠에들었다.



5일차 총 경비.

러시아 나우스키 마트, 도시락 라면 2개, 물 500ml 1개, 홍차 1개 - 210루블(\4,200)

러시아 나우스키 노점, 빵 1개 - 50루블(\1,000)

몽골 수호바타르 구멍가게1, 맥주 3캔 - 6000투그릭(\3,000)

몽골 수호바타르 구멍가게2, 보드카 1병 - 5000투그릭(\2,500)

몽골 수호바타르 노점상, 샌드위치 1개 - 1000투그릭(\500)

몽골 수호바타르 역, 길거리 환전수수료 - 약 \2,000

합계 \13,200